백골
관리자2026. 09. 07.조회 1#怒赤
백골/怒赤
기묘한 이야기를 듣고 왔다. 간부 중 하나의 부고에 대한 이야기다. 피츠카랄도가 죽은 이래 아무도 죽은 이는 없었는데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이 돌았다. 기지의 아랫것들이 모이는 곳마다 까마귀 떼처럼 웅성거리고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십걸집이 모두 모이는 일은 그리 없지. 오늘의 회의도 반 이상은 불참한지라 누가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고작 10명도 되지 않는 이들 중 하나가 죽었다면 남은 이가 모두 참석해 장례에 대해 논할 만도 한데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으레 떠도는 불길한 뜬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공명이 흘러가듯 묻더구나. 장례는 언제 치르실 겁니까? 하고. 마치 내가 상주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았지. 내 비속 중에서는 아무도 죽은 이가 없다고 말하자 공명은 미간을 좁혔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었는데, 마치 가엾은 이를 조소하는 것 같아 나는 불쾌한 심정에 그 자리를 떴다. 그것으로 더는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함의를 충분히 내비쳤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번서와 대화를 나누더군. 내 정신의 나약함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무례하게도.
내 옷이 외출복 차림인 것은 그 탓이다. 기분이 나빠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너를 찾아왔다. 위로를 구하고자 하여. 허나 너도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아 보이는군.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있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너는 본디 수다스러운 이가 아니냐? 나는 네 입이 닫혀 있는 순간을 본 일이 더 드문데 근래 들어서는 네 목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무엇이 그렇게 불만스러운지 알 수가 없어. 식사가 맛있지 않았나? 옷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가?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다면 말을 해 주면 좋을 것을. 하기야 너는 늘 그렇다. 제멋대로에 거만하고. 내가 네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데,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며 혀를 찬다. 이전엔 상을 뒤엎고 밖을 나돌더니, 나가지 못하게 하니 입을 다무는군. 어떻게 그렇게 너밖에 모르는 건가? 나는 너를 대하는 것이 슬프고 괴롭다. 나는 너를 어느 것 하나 부족하지 않도록 아끼고 있어. 비단으로 휘감고 좋은 물과 모이를 주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귀한 새와 같이 어여삐 해. 우리는 연인이 아닌가. 내가 이렇게까지 충심을 다해 아끼면 보답을 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나의 순애를 왜 이렇게 몰라주는가. 웃음 한 번, 손길 한 번이 어찌 이다지도 비싼가.
방을 들어올 때 보았다. 오늘도 음식에 하나도 손을 대지 않았더구나. 네가 몇 끼를 굶었는지를 알고 싶어서 일부러 들인 밥상을 치우지 말라 했다. 방 안에 밥상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 보여. 네 식사를 대느라 집 안에 그릇이 없어 질 지경이다. 처음 들인 밥상에서 이미 부취가 풍긴다. 레드. 날이 여름이다. 쉰밥에 파리가 꾀었다. 너는 약간 결벽이 있지 않았나. 전장에 나서도 피 한 방울 묻지 않도록 가장 높은 곳에서 밟아서 죽이는 자가 아니었었나. 그런 너를 위해서 가장 깨끗한 방을 준비했다. 바닥도 벽도 새로 깔았는데 편백나무 향이 그새 가셨구나.
남자는 한숨을 쉰다. 남자는 시신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밥상을 들고 온다. 보라색으로 삭은 밥알에 시커멓게 짓무른 반찬이 정갈한 척 담겨 있다. 남자는 시체의 턱을 붙잡고 입을 벌려 음식을 밀어 넣는다. 탄력을 잃어버린 근육이 늘어지면서 턱이 빠질 듯이 덜걱거린다. 남자는 시체가 생전 먹을 것에 까다롭게 굴던 것을 떠올리고, 별 말 없이 상한 것을 받아먹는 태도를 일종의 순종으로 받아들인다. 남자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가락에 검은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 휘감긴다. 맛이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먹지 않은 것이 먼저 잘못한 것 아닌가. 한번 쓴 맛을 보면 태도를 고치지 않겠나. 정말로 어쩔 수가 없다. 남자는 준엄한 태도로 음식물을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식도가 터지고 시체의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본다. 기어코 모든 것을 쑤셔넣고서야 새로운 밥상을 들이고는 상 앞에 시체를 기대 앉힌다. 그리고 시체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한다. 겸상을 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라는 듯이 미미한 웃음을 띤 채로.
식사를 끝낸 남자가 옷을 갈아입다가 문득 묻는다.
나와 겸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명예인지를 아나? 너는 모르겠지만 내 밑의 놈들이라면 감격해 눈물을 흘릴 지도 모른다. 너도 조금쯤은 기뻐해줬으면 좋으련만.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너는 참으로 주제를 모르는 놈이다.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고 땅이 넓은 줄을 몰라.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 주었는지를 아느냐? 네 멍청한 행동도 눈감아 주고, 동료의 죽음을 모른 체 하고, 부하가 죽어가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너의 곁을 지켜 왔다. 하지만 너는 단 하나도 몰라. 내 모든 헌신과 봉사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후안무치하게 날뛰어 왔어. 입으로 하는 감사 몇 마디나 듣자고 기쁨에 겨워 기꺼이 네 발을 닦아 왔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 믿었었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이 비로소 행복하구나. 너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닐 때보다 너를 품에 안고 잠드는 나날이 행복하다. 사실 지금이나 이전이나 그리 내 행동이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차이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더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네게 보답을 바라지는 않아. 꽃에게 물을 주는 이는 꽃이 그저 아름답게 피기만을 바랄 뿐이다. 열매를 바라는 자는 과실수를 키우는 자이지. 나는 너를 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이 그저 어여쁠 뿐인 꽃이다. 그저 내 곁에서, 내 시중을 받으며 피어있기를 바란다. 분내 풍기는 계집들과 시시덕거리거나 더러운 사내놈들과 어울리는 대신에. 나는 네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불안하게 하는지. 나는 너를 만난 이래로 시중드는 이의 행복이 무언지를 알게 되었다. 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고 싶지 않고 네 발에 흙 한 톨 묻히고 싶지 않다. 네 몸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가 않다. 얼굴을 씻기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기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내 수발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랑스러움을 더듬으며 하루를 보낸다. 너는 너무나 연약해져서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거동은 물론이고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하기 시작하더구나. 네 분리된 살을 그러모아 다시 다듬어 줄 때 예전 같은 고운 모양이 나오지 않는 것이 유일한 안타까움이다. 내가 손재주가 많이 없다. 어찌되었건 모든 준비를 마치면 한 이불을 덮고 잠에 든다. 이것이 부부의 행복일까? 이리하여 부부를 반려라고 하고, 인생을 함께하는 반신이라 부르는 것인가? 일평생 이런 지극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충족감에 삶이 가득 차 있다. 모두 네 덕분이다. 요즈음은 혼례를 올릴까 생각하고 있다. 기쁜가. 나는 네가 기뻐해주길 바라고 있어. 미소를 지어준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 분 일 초를 아끼지 않고 하루 종일 너를 기쁘게 할 생각을 한다.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포락을 달구거나 봉화를 피울 수도 있는 것을. 포사보다도 네가 더 웃지를 않아. 그래, 조금 웃은 것도 같구나. 웃으니 어여쁘구나. (입가에 꾀인 벌레가 꿈틀거렸다.) 너는 원래도 흰 피부였지만 근래는 훨씬 더 희어져서……. 새하얀 혼례복이 아주 잘 어울릴 터이다. 햇볕을 쐬지 않은 탓인가. 희기가 옥과 같다. 사람이 하얀 것 같지가 않아. 내일은 함께 외출이라도 하자.
남자는 구더기 끓는 백골을 끌어안고 혼례를 치른다. 장례와도 같은 혼례식이다. 참가한 모든 이가 비감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너와 화촉을 밝힐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제는 백년가약을 맺었으니 부인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생에 다시없을 사랑임을 아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낌없이 그대를 사랑하리라. 이런 순간까지 답하지 않는 것은 또 무어냐. 수줍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사람들은 남자가 미쳤다고 한다. 직계의 도키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말한다. 남자의 시중을 드는 사람들은 신방에서 나온 남자가 옷에서 떨군 구더기를 치울 때마다 신부가 주인을 곧 무덤으로 끌고 갈 것 같아 겁이 난다며 옷자락으로 눈가를 닦는다. 집안에 썩는 내가 자욱하고 벌레가 들끓었다. 이불을 가는 자는 매번 비단이불 속의 다 썩어가는 시신과 끈적거리는 썩은 물을 보며 토했다. 매일 저택 뒤편에서 이불을 태우는 연기가 올랐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시체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광증이 멈추고 젊은 주인이 이지를 찾을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요?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못했다.
한 바퀴 제비가 돌고, 제비를 뽑은 자가 결연한 얼굴로 시체를 끌어내 놓았다. 남자가 외출한 여름의 한 낮이었다. 백주대낮에 끌어내어진 시체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 옷으로 휘감기고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한 눈에 보아도 귀애하는 애첩 같은 모양새였다. 구더기 들끓는 뼈를 감싼 천은 새빨간 색이었다. 모두가 시체가 아직 살아 움직이던 시절을 떠올렸다. 갓 출혈한 피처럼 새빨간 사람을.
침묵 속에 작은 논의가 있었다. 묻어야 하지 않겠소. 그래도 도키 님께서 아끼신 이인데. 아서, 땅에 묻었다간 다시 파내시지 않겠습니까. 완벽하게 시체를 없애야 할 거요. 불에 태웁시다. 그들은 생전의 시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나, 계집취급을 받으며 썩어가다가 불에 타서 묏자리 하나 남기지 못하다니 처참한 최후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모든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허망한 데가 있는 죽음이었다.
제비를 뽑은 이가 기름을 가지러 간 사이 집의 주인이 돌아왔다. 가장 먼저 신방을 찾은 남자는 제 부인이 거기에 없는 것을 알아챈 순간 미친 사람같이 되어 달려 나왔다. 순식간에 창백해 진 안색을 한 남자는 실이 엉킨 인형이 허우적거리듯 사지를 움직이며 부인을 찾아다녔다. 종복들의 마음이 급해졌다. 빠르게 수신호가 오가고 허겁지겁 달려 간 자가 불을 지른다. 그 발걸음 소리를 남자도 들었다. 소란을 따라 뒤뜰에 당도한 남자가 불길이 오르는 시체를 본다. 남자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간다. 막으려고 하는 손들이 소용이 없다. 시체의 꼴은 불꽃으로 이루어 진 무덤에 들어있는 것 같다. 남자는 연인이 사라질 것만 같은 공포 속에서 정신없이 달려가 끌어안는다. 몸에 불길이 옮겨 붙는다. 남자는 제 몸으로 불길을 덮어 끈다. 팔을 휘저어 불길을 떨쳐내자 살점이 타들어가 벗겨지는 백골이 흐느적거린다. 남자는 물 밖에 나온 붕어처럼 말이 되지 않는 소리로 외친다. 팔을 들어라, 웃어라, 어떻게든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여! 남자는 해골의 입가가, 새하얗고 고른 치열이, 거기에 붙은 수십의 벌레 떼가 희멀겋게 꿈틀거리는 것을 본다. 불타 죽는 벌레 무리의 꿈틀거림이다.
아아, 웃는다. 웃고 있어. 살아 있어……. 살인자, 거짓말쟁이, 사기꾼의 웃음이다. 너는 또 나를 속이고 있어. 단 한 번도 내게 진실했던 적이 없어. 내 친구는 옛 저녁에 죽었어. 내 집에서 살아있었던 적이 없다. 아니다, 내 반려가 죽은 사람 일 리가 없다. 일평생 함께 하기로 하지 않았나. 아홉 번 술잔을 나누며 태어난 일시는 달라도 죽는 날은 함께 하자고 맹세했던 것도 거짓이었나. 생에 하나뿐인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네가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나도 따라 죽겠다. 너 없이는 더는 살아갈 수가 없다. 네가 없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 하지만 역시 네가 죽었을 리가 없지. 언젠가 파리를 박살내면서도 미술관만은 부수지 않은 마스크 더 레드가 입을 열어 말하기를,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미적인 가치야 말로 불멸한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 속 깊이 이해했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불멸하는 가치가 있구나. 내가 눈 한 쪽이 없어도 그대의 앞에서 달이 숨고 새가 떨어지며 꽃이 시드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런데, 레드, 저 자를 보아라. 지금 뛰어 들어와 바닥에 몸을 내던진 자를. 무엇이 그리 급한지 허겁지겁 달려 들어와 무릎을 꿇었구나. 떨고 있군.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있고 전신이 땀에 비 오듯 한다. 바닥이 땀에 젖는구나. 너는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데. 당장 쫓아내라고……. 하하, 네 뜻은 알겠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지는 들어보기로 하자. 할 말이 있으니 저리 급하게 달려온 것이 아니겠느냐. 대신 땀방울은 직접 닦고 나가게끔 시키도록 하마. 부루퉁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귀엽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치 아양을 부리는 고양이나 작은 새와 같다고. 이런, 잠시만 시선을 떼도록 하지. 할 말이 있다지 않느냐. 나는 저들의 좋은 주인이니까, 충실한 말을 제대로 들어 줄 의무가 있다. 하는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듣자하니 간언하듯이, 피를 토하듯 망언을 하는구나. 저 자는 네가 죽었다고 말한다. 너는 이미 구더기가 낀 시체라고 말하고 있어. 감히 제 주인의 안주인을 모욕하고 인륜지대사를 모욕하고. 혼기가 찬 딸이 있어서 감히 외척의 자리를 탐내기라도 하는가. 그것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서글픈 아비의 정인지 권력을 탐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이 또한 기묘한 일이다. 보통은 안주인의 부정한 행위에 대하여 꾸며 댈 터인데. 아니다, 더는 생각을 할 것이 없다.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아내가 모욕을 당했으면 그를 갚아주는 것이 지아비 된 자의 도리가 아닌가.
그리고 남자는 한참을 웃다가 입을 열고는 말한다.
「여봐라, 저 무엄한 자의 목을 쳐라!」
그 때 백골이 정말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