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
언젠가 친구는 '직계, 네 목을 잘라 소반에 담는 상상을 한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너무 뜬금없는 말이라 왜 그런 상상을 하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네 잘못이 아니다. 내가 본디 믿지 못할 자라 그렇다. 그렇게 말하고는 제 말이 웃기다는 듯이 폭소를 한다.
직계, 내가 내게 마음을 놓는 자들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하는지 아느냐? 내 동료이기 때문에 자기는 죽지 않으리라고 믿는 그 같잖은 것들을, 그 시원하게 드러낸 등짝을 찌르지 않고 넘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왜 모르느냐? 네가 죽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를 네가 어찌 모른단 말이냐? 오히려 네가 다른 자들보다도 더하다! 다른 이들은 으레 저놈은 못 믿을 놈이다, 하고 의심스러운 시선이라도 보내는데 너는 그러지 않지. 그래서 나는 네 목도 자르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인사 대신 무기를 날리면서 튀어나오지. 놀자고 하는 것이 아니니 그저 대련인 것 마냥 받아주지 마라.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무에 쓴단 말이냐?
어느 날 급습을 해서 네 목을 자르면, 너는 아무것도 모른 채 언제나처럼 인사를 하다가 목이 잘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바닥을 구르는 네 목을 주워들고 자못 안타깝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다가, 피에 범벅되어 얼굴에 뒤엉킬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 정리해 줄 것이다.
쩍쩍 달라붙는 머리카락 한올 한올이 모두 치워져 놀람도 없고 어리둥절함도 없고 작게 나를 반기는 듯 풀린 눈가만이 사람의 표정이다 싶은 네 머리가 드러나면, 나는 그것을 끌어안고 한참을 웃기만 한다. 입으로는 방심했구나! 직계! 정말 나를 믿었느냐? 하고 비웃어대면서도 속으로는 드디어 너를 죽였다, 나는 쭉 이러고 싶었다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드디어 바라는 것을 얻은 기쁨에 흥에 겨워 네 머리를 높이 들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출 것이다.
내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네 아랫것이 찾아와 무슨 일이냐고 안부를 물으면 나는 장지문은 열어 손에 들린 네 목을 들이밀며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희게 질린 상대의 얼굴을 보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겠지. 왜냐면 너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문 너머로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주인의 원한을 갚겠다는 혈풍련을 모조리 죽이고, 내친김에 네 식솔도 모두 죽이고, 이제 나와 너밖에 남지 않은 방에서 네 머리를 물에 넣어 헹구며 말을 건네겠지. 네가 소중히 여기던 것이 모두 죽었구나. 네가 지키지 않아서가 아니냐, 네가 눈을 감고 외면해서 모두 죽은 것이 아니냐? 자 직계, 나를 죽이고 싶지 않으냐? 그런데 왜 눈을 뜨지를 않느냐? 물론 죽은 입이 그런다고 열릴 리는 없고, 그러면 나는 안심한 듯이, 실망한 듯이, 그 당연한 사실에 절망한 듯이 바닥을 치고는 네 수급을 끌어안고 뒹굴다가 잠이 드는 것이다.
그 후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네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 올려다 놓고 나도 그 앞에 앉아서 한참을 쳐다보며 네 얼굴을 이리저리 주물러 표정을 만들어 볼 거다. 상상할 수 있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하나하나 만들어보다가, 산 너도 짓지 않던 표정을 죽은 네가 짓고 있다는 괴리감에 입술 양 끝을 올리던 손을 놓을 때쯤이면 네게서 썩은 내가 풍길 것이다. 박제하든 방부제에 절이든 무슨 수단이든 강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어쩐지 일어나지 못해서, 소반에 담긴 네 머리만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굶어 죽고 만다. 아사하기 직전에서는 나도 이성의 끈을 놓은 채 썩어 문드러져 벌레가 낀 네 머리에 이를 박고 썩은 살을 갉으며 수치도 모르고 벌레보다 못하게 죽는데, 그러면서도 마지막엔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저승에서 재회한다면 너는 나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는.
소반 위에 올려진 친구의 목은 창백하고 정갈하다. 하지만 표정은 증오에 차 일그러져 어떻게 만져보아도 바뀌지 않았다. 도키는 그 표정이 아마 배신감이리라 생각하면서 생전 들뜬 채 조잘거리던 모습과 비교해본다. 그러자 후회가 들 듯 말 듯하기도 한다. 먼저 죽일 생각을 떠벌린 것은 제 놈이면서, 막상 본인이 당하는 것은 싫어하는 비겁함을 애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친구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이게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행할 필요가 없었던 일이었다. 다만 왜 친구가 자신의 목을 자르고 싶어했는지만은 잘 알 수 있게 되어 뭐라 말할 수 없이 애틋하였다.
그것이 둘 사이에 성립한 첫 이해였다.